Pi상적이고 Jeol대적인 백남준

피상적이고 절대적인 백남준

방송 80년 KBS미디어축전 ‘백남준의 미래’를 준비하며


 

글쓴이 문화예술팀 이광록 PD


 

 

1. 불가해한 동양인

“넥타이는 맬 뿐만 아니라 자를 수도 있으며,

피아노는 연주뿐만 아니라 두들겨 부술 수도 있다.”

-백남준 어록에서


 

故 백남준은 너무나 솔직한 사람이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한 한국인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바보이며 미친 놈’이고 아직도 미친 자로 통한다고. 또한 자신은 졸부(Snob)이지 천재가 아니라고 실토했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영문으로 자서전을 쓸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홍콩과 일본을 거쳐 독일로 다시 미국으로 세계를 누비며 비디오 아트로 20세기의 대표 예술가 반열에 오른 그에겐 조국의 언어로 쓴 자서전보다 영문 자서전은 수긍이 가는 일이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가 쓰고 싶은 자서전의 제목이다. 다름 아닌 ‘알기 쉬운 동양인(scrutable oriental)'이라 붙이고 싶다는 것이다. 서양인들은 동양인에 대해 ‘불가해한(inscrutable)’ 인간들이란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니면 천하의 백남준이 죽을 때까지 스스로 동양인이라는 편견과 싸우고 있었거나 열등감을 숨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긴 옛 지인들은 백남준은 소심하고 얌전한 부잣집 아들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거장 예술가의 숨은 뜻을 누가 알겠냐마는 그는 이미 고인이 되고 말았으니 그 영문 자서전은 영영 읽어볼 수 없게 되었다. 어찌 됐든 백남준은 유사이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 되었고 그가 불가해한 동양인인지 이해하기 쉬운 한국인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2. 사기꾼? 백남준

“원래 예술이란 반이 사기입니다.

속이고 속는 거지요. 사기 중에서도 고등 사기입니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입니다.”

-백남준 어록에서

 

백남준은 한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예술가이다. 특히 1984년 1월 1일에 전 세계에 위성 생중계된 퍼포먼스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세계의 어떤 예술가도 이루지 못한 미디어 소통의 창의적 메시지로 과학과 예술의 결합을 통한 인류의 희망을 표현했다. 그해 위성 퍼포먼스를 성공리에 마치고 귀국한 그는 아주 이상한 말을 하게 된다. 예술이 사기라나? 어쨌다나!…….

 

그의 말대로 정말 예술은 사기일까? 한국인은 이 알듯 모를 듯한 백남준의 뜬금없는 돌발 선언에 아직도 당혹해 하고 있다. 항간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쇼를 해야 한다’는 상업적 이슈로 그의 사기론은 재활용되고 있다. 사실 예술사 전대미문의 사기 쇼는 1917년 마르셀 뒤샹이 ‘샘’이라 명명한 변기를 레디메이드로 화랑에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전통적인 예술의 독창적인 아우라를 파괴하고 창작(創作)이 아니라 선택(選擇)만으로도 예술이 가능하다는 개념의 전복과 논리적 유희를 통한 현대예술의 ‘사기(詐欺)’를 보여준 것이다. 이제 선택뿐 아니라 명명(命名)하는 자가 곧 예술가로 인정받는 예술 사기꾼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예술이 사기냐 아니냐하는 논의는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백남준이 미국사람들이나 유럽 사람들이 아닌 유독 한국인들에게 말한 ‘예술은 사기’라는 문맥에 숨은 의미를 잠깐 살펴보자. 그것은 당신 앞에 놓여진 예술이 진실인가 혹은 거짓인가 하는 관념적 논리가 아니라 현실과 가상에 대한 재현에 관한 논리로부터 출발한다. 우리는 현대화, 혹은 세계화를 통해 서구의 즉물적인 문명과 표피적 가치를 받아들이면서 육화되고 물화된 문화라는 견고한 덩어리에 갇힌 삶을 살고 있다. 상인들에게 세계는 숫자에 불과하다. ‘5마리의 코끼리’로는 진정한 코끼리를 헤아릴 수 없다. 정치인에게 그들은 우두머리와 졸개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며, 생물학자에게 그것은 복잡하고 긴 관찰의 기록에 불과하다. 현실은 인류가 가진 그 어떤 장치로도 구체화할 수 없다. 특히 문자와 같은 언어로 그것을 표현하자마자 현실은 가상이 된다. 코끼리는 코끼리라고 발음하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백남준은 현대예술, 특히 인간 활동의 정수로써 예술이 무어냐고 묻는 우리에게 타자에 의해 도식화된 틀과 의도된 정략적 세계 속에서 탈출하라고 말한다. 낡고 편협하지만 고지식한 번역기를 돌려 쉽게, 알아먹게 말하자면 사기꾼 백남준이 우리에게 던진 말을 이런 식으로 고쳐 통역을 하고 싶다. “원래 세상이란 반이 사기입니다. 서로 속이고 서로 속는 거지요. 사기 중에서도 고등 사기입니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세상을 지배하는 방법입니다.”

 

 

3. 피상적이고 절대적인 문화

 

“창조가 없는 불확실성은 있지만 불확실성 없는 창조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청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려고 이 전람회를 끌어온 것이 아니다.

청년들에게 무슨 음식이나 깨뜨려 먹는 강한 이빨을 주려고

이 고생스런 쇼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백남준 어록에서


사실 우리는 너무나 백남준을 모른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 기행을 일삼는 전위 예술가라는 수식어 정도의 수준이다. 특히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라는 부분에서 우린 묘한 이율배반적 감정에 빠져든다. 백남준과 한국인의 본질적으로 엇갈린 인식에는 문화나 예술 외적인 관점에 있다. 어떤 이는 외국에서 배우고 컸기 때문에 진정한 한국인이 아니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그의 가문에 민족의식이 없었다는 둥, 또는 부친의 친일행적이 어떠하다는 식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조국을 애틋하게 생각한 애국자라는 둥 전혀 백남준과 관련이 없는 문제로 정말 주목해야할 백남준의 문화적 가치에서 눈길을 외면해 왔다.


이렇게 본질과는 무관한 분석적 사고에 얽매인 한국인의 습성은 본디 서양적인 논법의 개연적인 사고행태를 답습한 잘못이다. 마치 연기자의 사생활을 파헤치고 분석하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일과 비슷하다. 그런 면에서 모든 타자의 문화는 그 본질을 나누고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피상적이고 독선적인 환상 속에서 재구성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인의 눈에 비친 이 젊은 한국인은 일찍부터 그 잠재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걸 보면 우리와는 참 많이 다르다. 독일에서 존 케이지를 만나고 요셉 보이스와 교류하던 때가 1958년경이니 서양인들이 본 백남준은 특별히 한국인이라기보다 TV를 갖고 노는 특이한 사람에 가까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느 공연장에서 백남준은 서양문화의 대표적 상징물인 바이올린을 내리쳐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자신의 전통문화를 부정하는 파격적인 공연을 맹비난하는 어느 바이올린 주자의 난동을 막아 풋내기 동양인이 자신들의 전통을 깨게 해준 것은 그들이었다. 한국에서 누가 과연 ‘가야금’과 ‘거문고’를 내리쳐 부수는 공연하고도 무사할 수 있을까? 외국의 예술가가 한국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가야금’이나 ‘사물’들을 부수며 ‘절대적인 한국에 갇힌 진정한 한국인의 정신’을 해방시키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백남준이 세계적인 거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 문화의 관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백남준은 나아가 현대의 거장 요셉 보이스가 부러워 할 정도로 유머와 위트가 넘치게 말을 잘했으며, 동서양의 인문학에 누구보다 해박했고, 미래를 예견하는 선견지명을 가졌다. 훌륭한 예술가는 인류에게 선사하는 엄청난 선물이다. 사실 앤디 워홀이 미국 놈인지 영국 놈인지, 피카소가 프랑스 사람인지 스페인 사람인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그의 음악이 그의 그림이 내 가슴으로 다가왔고 나는 나의 예술을 즐기고 교감하면 그뿐이다. 세상에는 나의 음악이, 나의 미술이, 나의 문화가 존재하고 ‘나’를 이루는 ‘나’는 절대적으로 ‘나의 문화’이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너의 문화가 짠! 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어쩌면 진정한 ‘나의 문화’는 요원한 일일지도 모른다. 타자의 문화는 나에겐 너무나 피상적이고 자신의 문화는 너무나 절대적이다.

 

 

4. 별과 달과 토끼와 거북을 잊은 그대에게

 

“레오나르도처럼 정확하게

피카소처럼 자유분방하게

르느아르처럼 화려하게

몬드리안처럼 심오하게

폴록처럼 격렬하게

재스퍼 존스처럼 서정적으로

이것 때문에 우리는 텔레비전 스크린 캔버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

-백남준의 어록에서

 

대한민국은 주식회사이다. 대한민국은 붉은 악마다. 대한민국은 IT강국이다. 대한민국은 ‘비’이며 ‘보아’이며 ‘난타’다. 대한민국은 바람 빠진 한류이며, 대한민국은 FTA이며, 대한민국은 내신 30%이며, 대한민국은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대한민국과 무관하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백남준이다. 아직도 갓 태어난 신생 문화를 지향하고 미래와 가장 가까운 문화를 즐기며, 파격과 혁명으로 간단없이 돌파해야 할 싱싱한 가치로 가득한, 신나는 곳이다.

 

다만 조금 안타까운 것은 어릴 적 할머니의 무르팍에서,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누이의 창가에서 그렇게 아름답고 수북하게 쏟아져 내리던 별과 달, 토끼와 거북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괴물 슈렉과 요괴인간과 거미인간들로 쉭쉭 쌩쌩 날뛰는 이 무서운 속도의 타인들에게 맘을 빼앗겨 버린 지 오래다. 달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TV라며 거북과 만나고 토끼와 대화하며 미디어로 소통의 바벨탑을 세우고 싶었던 한국인, 백남준. 오늘날 본연의 자세를 망각하고 어쭙잖은 정치놀음에, 대의명분에, 자신의 정체를 잃어버린 우리 TV를 향해 천국에서 백남준은 거침없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TV야 나랑 세계적으로 한 판 놀자! 글로벌 글루브(Global Groove, 1974)처럼,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처럼, 바이바이 키플링(1986), 랩어라운드 더 월드(1988)처럼”

 

* KBS는 방송 80년을 맞이하여, 미디어아트의 창시자로 세계문화계에 큰 족적을 남긴 故백남준의 예술세계를 기념하는 KBS미디어축전 <백남준의 미래>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KBS 신관TV공개홀 로비를 특별전시장으로 꾸며 백남준의 전성기 대표작을 중심으로 방송80년 KBS특별전,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이란 전시회를 개최하고 특집 방송과  풍성한 문화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백남준 KBS특별전 홈페이지 : www.kbsnamjunepaik.com

by chichi | 2007/09/17 11:04 | 얼음 평원에서.. | 트랙백(1)
Tracked from Softbank Ven.. at 2008/01/03 10:18

제목 : 남준팩과 원조 한류
집사람 등쌀에 떠 밀려, KBS 개국 80주년으로 기획된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 전시회를 지난 일요일인 12/30날 다녀 왔다. 알고 보니, 7월달부터 시작한 전시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백남준씨가 2006년 타계한 후에 한국에서 갖는 일종의 회고전의 의미도 있었고, 그 내용이나 기획도 일반인인 내가 보기에도 입장료 만원값은 충분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특이한 그리고 대표적인 작품도 직접 볼 수 있어 좋았지만, 그의 독특한 어록들이 특히......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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